PORONG 작가 인터뷰

        ‹  Interview   –   박종호   Jong-ho Park  ›

❝ 저는 목탄과 연필로 그린 묘사된 형상을 보고 과거를 온전히 떠올리고 싶습니다.
   나의 기억은 무채색이라고 느껴졌어요. 
   기억 속 동네는 칼라풀 하지 않은 차분한 회색톤이라고 생각합니다. ❞

 예술가의 드로잉이 망각에 저항하는 삶에 대해 무엇을 알려줄 수 있을까? 
박종호 작가는 자신의 고향인 성남 원도심을 배회하며 작은 크기의 목탄과 연필 드로잉을 한다. 
그는 재개발 예정 지역에서 살던 동네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옛 기억을 인터뷰하는데, 사람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미 사라진 동네를 기억해내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가 주로 활동하는 곳은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 일대이다. 
그곳은 2023년 10월 자이푸르지오 아파트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재개발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원도심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상승하였고, 그 기대감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가 상승률 1.92%(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0년 1분기 지가변동률 및 토지거래량’에 따른)로 표현된다. 
세련되고 개선된 주거시설, 쾌적한 생활 인프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표적인 자산 증식 수단으로써의 새로운 부동산이라는 점이 기대감 상승의 요인일 것이다. 
그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이라도 하듯 자신과 사람들의 옛 이야기에 더욱 집요하게 매달린다. 

❝ 드로잉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저는 신흥2동과 신흥3동에서 20년 이상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재개발 현장과 골목 하나의 거리를 두고 지냅니다. 사라진 동네 모습이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살던 곳이 없어지고 난 다음에 갑자기 아련함이 닥쳐왔습니다. 너무 준비 없이 동네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기억이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며 기억을 떠올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기억 속 동네를 그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려지나요? ❞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녹음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녹취록을 작성합니다. 다시 녹취록을 읽어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단어들을 사용해서 문장으로 만들어요. 그 문장을 보고 다시 과거의 풍경을 상상하여 그립니다. 

  ❝ 어떤 분들을 인터뷰하셨나요?  ❞ 

  저와 어렸을 적 기억을 공유한 지인들 인터뷰를 했습니다. 성남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가족, 옛 친구들, 동네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7명을 인터뷰했고 각각 2, 3차례에 걸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옛날에 성남이 그랬었지!’ 하고 잊고 있던 것들이 떠오릅니다. 

❝ 이야기 중에 가장 먼저 영감을 받은 소재가 있는지? ❞ 

  희망대공원을 어린 시절 우리는 많이 좋아했었나 봅니다. 거기에 찾아가 보니 예전 기억대로 남아있는 것이 팔각정밖에 없었습니다. 예전 모습대로 남아있는 팔각정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라진 놀이공원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대관람차를 그리고 싶은데 아무리 해도 이미지가 잘 안 떠오르네요. 아마 어렸을 때 제가 못 타봤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 성남의 옛 풍경을 떠오르게 하는 인상적인 인터뷰가 있었는지? ❞ 

  한 분이 어린 시절 놀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창문을 열면 바로 친구네 집이어서,엄마한테 혼나서 갇히게 되면 친구 집을 통해 넘어가서 놀았다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세대 주택이 비좁게 붙어있던 그런 풍경은 지금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사라져서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 인터뷰하면서 떠오른 성남의 느낌이 있는지? ❞ 

이야기하다 보면 지긋지긋한 가난에 대해서 떠오릅니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론 우리는 재밌게 잘 살았었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이제 그 기억이 다 사라진다 생각하니 여러 감정이 뒤섞입니다

❝ 목탄이나 연필... 그런 무채색 도구로 그리시는 이유가 있나요? ❞ 

  저는 건조한 재료로 그린 묘사된 형상을 보고 온전히 과거를 떠올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억의 색은 무채색이라고 느껴졌어요. 나의 기억은 칼라풀 하지 않은 차분한 회색톤이라고 생각합니다. 

❝ 묘사된 형상이요? ❞ 

인터뷰한 주민들의 기억을 들으면서 나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져 나오는 대상이요.

❝기억의 일치일까요? ❞ 

아니에요. 기억에 상응한다? 인터뷰 녹취록을 풀면서 인상적인 단어가 있으면, 그 단어를 중심으로 떠오르는 머릿속의 풍경, 기물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 연필은 텍스트를 서술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기도 하고요. ❞

재료적인 특성이 잘 맞는 거 같아요. 천천히 기억을 더듬으며 묘사하려 할 때 적당한 재료인 거 같아요. 그 뚜렷하지 않은 기억에서 시작해서 그 이미지를 구체적인 형상으로 잡아가려 할 때요. 처음에는 콘테나 연필이 기억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단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기억을 더듬으며 찾아가면서 형상이 명료해지고 또 어떤 때는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옛날 성남의 사진 자료 또한 여러 기관을 찾아가 리서치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옛 사진 자료와 작가님의 무채색 드로잉이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 

기억에 대한 이야기일 거 같습니다. 사실과 그림이 얼마나 똑같나보다는, 기억을 현재에 어떻게 불러일으키는가 하는 것이 이번 작품에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이 점이 과거를 기록한 사진 자료와 차이가 있는 부분일 거 같습니다. 

❝ 저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민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동네가 사라져버리는 것이, 
그게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지 이번 작품을 통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 

 ❝ 기억을 그리고 계시지만 옛 성남의 기록을 넘어, 동시대 성남의 이슈에 대한 관심이 작업에 드러나는 걸까요? ❞ 

 제 삶의 기억을 되짚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민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동네가 사라져버리는 것이, 그게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지 이번 작품을 통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 재개발에 대한 생각을 더 이야기해 주신다면? ❞ 

항상 제 곁에 있었던 것이 없어지니까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나의 일상 한 부분이 없어진 느낌이요. 실감이 안 나는데 막상 없어지니까 충격적이었습니다. 재개발 진행방식도 폭력적이라고 느껴졌고요. 하나의 동네가 다 사라져버리는 광경을 매일 봐야 한다는 것이요.

❝ 인터뷰를 보면 사람들은 재개발에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반응이었어요. 작가님은 재개발에 부정적이신 것 같지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저는 재개발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동네가 사라져버리는 것이, 그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참 아쉽습니다. 혹시 다른 방법은 없을지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사람들과 동네에 대해 대화하면서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동네에 대한 기억을 수집하고 그림으로 그려보고 있습니다.